인슐린이란?

2017. 6. 15. 06:08 건강

인슐린은 우리 몸 속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우리가 엄마 젖을 빠는 순간부터 분비되기 시작하는 인슐린은 혈액 속의 포도당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인슐린의 합성과 분비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될 경우, 혈당이 세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혈관 속에 남아있는 당뇨병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슐린은 당뇨병을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기본이 되는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옛날부터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 왔던 당뇨병과의 싸움에 있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은 인간이 인슐린을 발견한 이후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혹자는 인슐린을 페니실린만큼이나 인간의 역사를 바꾼 획기적인 약물로 꼽기도 한다.

 

당뇨병이란 명칭은 환자의 소변에서 단맛이 난다는 이유로 만들어졌다. 그 병은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인슐린을 추출하여 당뇨병 치료의 문을 여는 데에는 밴팅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21년에 베스트와 함께 92번에 달하는 실험을 수행한 끝에 인슐린을 추출할 수 있었다. 밴팅은 1922년에 인슐린에 대한 임상 시험에 성공했으며, 이듬해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오늘날에는 유전자재조합기술을 이용해 인슐린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프레더릭 그랜트 밴팅 - 캐나다의 내과의사.

1916년에 토론토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부터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1920년부터 웨스턴온타리오 대학교에서 강의하였으며, 1921년부터 1922년까지 토론토 대학교에서 약리학을 강의하는 동안 공동 수상자인 J. J. R. 매클라우드의 연구소에서 매클라우드, 베스트와 함께 인슐린을 발견하였다. 1922년에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23년 밴팅 앤드 베스트 연구소를 창립하였다. 1934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존 제임스 리처드 매클라우드 - 영국의 생리학자.

1898년에 애버딘 대학교를 졸업한 후 1년간 라이프치히 대학교 생리학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었다. 1902년에 런던 병원 의학교에서 생화학을 강의하였으며, 1903년에 클리브랜드에 있는 웨스턴리저브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1918년에 토론토 대학교 생리학 교수가 되어 재직 중 밴팅 및 베스트와 함께 연구하여 인슐린을 발견하였다. 1928년에 애버딘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인슐린의 발견을 통하여 당뇨혼수 증상의 회복에 도움을 주었다.

 

성인병의 3대 주범으로는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콜레스테롤)이 꼽힌다. 그 중 고혈당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할 때 생기는 병이 당뇨병이다. 당뇨병(糖尿病)은 이름 그대로 오줌에 당이 섞여 나오는 병이다. 당뇨병의 의학명인 diabetes mellitus도 소변을 뜻하는 그리스어인 diabetes와 달콤하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인 mellitus를 합친 것이다. 17세기 영국의 의사인 윌리스(Thomas Willis)는 환자의 소변에서 설탕이나 벌꿀처럼 단맛이 난다는 이유로 당뇨병이란 이름을 만들었다.

 

당뇨병은 몸에서 에너지로 쓰이는 포도당을 정상적으로 이용하지 못할 때 생긴다. 밥을 먹으면 탄수화물이 당으로 변해 피 속으로 보내진다. 이때 췌장(이자)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세포가 당을 에너지로 사용하거나 저장하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췌장이 망가져 인슐린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나오기는 해도 그 효과가 작을 경우에 피 속의 당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면서 여러 가지 장애가 나타난다. 피 속에 당이 넘쳐 소변으로 빠져나가고 갈증이 심해진다. 세포는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해 오래 굶은 사람처럼 온몸에 힘이 없어진다. 그러다 눈이 멀기도 하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며 심할 경우 죽기까지 한다.

 

세포를 난로에, 포도당을 석탄에, 인슐린을 삽에 비유하면, 당뇨병은 석탄을 난로에 퍼 넣을 삽이 없어서 생기는 병에 해당한다. 난로는 열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주위의 석탄이 쌓여서 시커멓게 되는 것이다.

 

1889년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메링(Joseph von Mering)과 민코브스키(Oscar Minkowski)는 당뇨병의 원인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그들은 개를 이용해 동물의 내장 기관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아내는 실험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췌장을 제거한 개의 소변 주위에 파리 떼가 유난히 극성을 부린다는 점을 발견했다. 췌장을 제거한 수술 때문에 개에게 당뇨병이 발생했고, 소변 속에 포함된 포도당의 단맛 때문에 파리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이어 1908년에는 독일의 의사인 주엘처(Georg Zülzer)는 췌장의 추출물을 뽑아 환자에게 투여하는 실험을 했다. 처음에는 약간의 효과가 있었지만 곧이어 부작용이 나타나는 바람에 치료를 중지하고 말았다. 췌장에는 인슐린을 생성하는 β세포와 함께 글루카곤(glucagon)을 분비하는 α세포도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인슐린은 혈당을 낮추는 물질이고 글루카곤은 혈당을 높이는 물질인데, 이 둘이 모두 섞인 추출물은 당뇨병 환자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복합물질인 췌장액 속에서 혈당을 낮추는 기능을 하는 물질은 무엇일까? 1910년에 영국의 생리학자 샤피-셰이퍼(Edward Sharpey-Schafer)는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에 이상이 생기면 당뇨병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랑게르한스섬에서 당뇨병과 연관된 물질이 분비될 것으로 추측하면서 이 물질에 인슐린이란 이름을 붙였다. 1916년에는 루마니아의 생리학자인 파울레스쿠(Nicolas Paulescu)가 인슐린을 추출하는 데 거의 성공했으나, 루마니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리는 바람에 연구를 중단하고 말았다.

결국 인슐린을 최초로 추출하고 임상 시험에 성공한 영예는 밴팅에게 돌아갔다. 그는 1891년에 캐나다 온타리오 주 앨리스턴에서 태어났고, 1912년에 토론토 대학교의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밴팅은 1916년에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 중의 하나였던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1919년에 정형외과 수련의를 거쳐 온타리오 주 런던에서 개업했다. 그러나 그는 병을 즉각적으로 치료하는 것보다는 병의 원인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밴팅은 연구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고,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의 생리학 연구실에 문을 두드렸다. 그는 밀러(Frederick Miller) 교수 밑에서 조교 노릇을 하면서 점차 자신의 연구 영역을 확대하였다. 당시에 밴팅이 많은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당뇨병이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죠(Joe)가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밴팅과 죠는 어렸을 때부터 단짝이었고 의과대학도 같이 다녔다. 그런 친구가 당뇨병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이다.

192011월 초에 밴팅은 췌장에 있는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비되는 물질이 당뇨병과 관련되어 있다는 요지의 논문을 읽었다. 논문을 읽으면서 밴팅은 그 물질을 추출하기 어려운 이유가 추출하는 과정에서 췌장액에 의해 분해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다음날 밴팅은 도서관을 뒤지면서 여러 문헌을 찾아본 뒤 췌장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트립신이 분비된다는 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밴팅은 만일 췌장관(이자관)을 묶어 트립신의 분비를 막는다면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비되는 그 물질을 추출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추론했다.

밴팅은 밀러와 상의하면서 자신의 가설이 새로운 시도라는 확신을 가졌다. 밴팅은 1920116일에 밀러의 소개로 탄수화물 신진대사의 권위자인 토론토 대학의 매클라우드(John Macleod) 교수를 찾아갔다. 매클라우드는 밴팅이 세운 가설의 의미를 곧바로 알아챈 뒤 밴팅에게 5개월 정도 연구에 집중할 생각이 있으면 다시 연락하라고 말했다.

 

1921514일에 밴팅은 토론토로 가서 당뇨병 연구원으로 변신하였다. 매클라우드는 밴팅에게 실험실, 실험장비, 실험동물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당뇨병 개를 만드는 방법과 췌장 묶는 방법을 시범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매클라우드는 혈당 및 요당 측정에 경험이 있는 대학원생인 베스트(Charles Best)를 조수로 붙여 주었다. 그러나 밴팅과 베스트에게 별도의 급여나 연구비가 지급되지는 않았다. 그 때 밴팅은 30, 베스트는 22세였다.

 

밴팅과 베스트는 1921516일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들은 개의 췌관을 졸라맨 뒤 췌장에서 생성되는 소화액과 세포가 퇴화될 때까지 몇 주일을 기다렸다가 랑게르한스섬의 반점이 남아있는 부분을 떼어냈다. 그런 다음 그것을 얼음으로 냉각한 생리식염수에 갈아서 당뇨병 개에 주사하고 혈당의 변화를 관찰했다.

 

실험은 10마리의 개로 시작되었지만, 91마리가 되도록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92번째 당뇨병 개에게 랑게르한스섬에서 추출한 물질을 주사했더니 몇 시간 후에 개가 제 발로 일어서서 꼬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그때가 1921727일이었다. 밴팅은 당뇨병의 치료제가 될 이 물질을 섬(랑게르한스섬)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이라는 뜻에서 아일레틴(isletin)으로 명명했다.

밴팅과 베스트는 아일레틴을 지속적으로 주사하면서 92번째 개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했다. 그런데 20일이 채 되지 못해 그 개는 당분이 너무 많아 죽어버렸다. 개에게 충분한 아일레틴을 주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충분한 양의 아일레틴을 얻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그는 도살된 소로부터 충분한 아일레틴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밴팅은 소의 췌장에서 당뇨병 개를 치료하는 데 충분한 아일레틴을 얻을 수 있었다.

 

밴팅의 실험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매클라우드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당시에 매클라우드는 밴팅의 아일레틴이 샤피-세이퍼가 추측했던 물질이었을 것이니 인슐린으로 명명하자고 제안했다. 때마침 192112월에는 미국생물학회가 뉴헤이븐에서 열리게 되었다. 초록을 제출하는 시점이 너무 임박했기 때문에 밴팅은 매클라우드에게 초록을 작성해 줄 것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매클라우드의 이름도 논문에 실리게 되었다.

 

당뇨병 치료에 있어 가장 큰 진척을 보게 된 것은 1921년 캐나다의 프레데릭 밴팅(Frederick Banting)과 찰스 베스트(Charles Best)가 했던 실험 덕분이었다. 이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해내는데 성공하면서 당뇨병 치료는 획기적인 전기를 맞게 된다. 1922년부터 인슐린이 상용화되면서 많은 당뇨병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23년에는 일레틴(Iletin)이라는 이름으로 첫 인슐린 제품이 선을 보였다. 이때부터 비로소 당뇨병 환자들은 인슐린 주사를 이용하여 혈당을 내리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밴팅은 인슐린을 발견한 공로로 토론토 대학으로부터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밴팅의 연구팀은 토론토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던 50명의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주사하여 46명의 환자의 증세가 호전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인슐린의 효과가 전해지자 당뇨병 환자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고, 밴팅의 연구팀은 불과 몇 달 동안에 수백 명에 달하는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밴팅의 친구인 죠와 영국 왕 조지 5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인슐린의 임상효과가 밝혀지자 1923년 노벨상 위원회는 밴팅과 매클라우드에게 생리의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밴팅은 매클라우드가 베스트 대신에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밴팅은 자신이 받은 노벨상 상금 중 절반을 베스트에게 주고 그가 진짜 인슐린 발견자라 공언했다. 이에 질세라 매클라우드도 자신의 상금을 콜립과 균등하게 나누는 것으로 응수했다.

1955년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데릭 생어(Frederick Sanger)가 인슐린의 아미노산 배열을 알아내게 된다. 이 발견 덕분에 1963년에는 인슐린을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게 됐고, 1980년에는 마침내 사람 인슐린이 개발됐다. 동물에서 추출한 인슐린이 아니라, 유전자 재조합 방식에 의한 인슐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 전에는 주로 소나 돼지에서 인슐린을 얻었는데, 소의 인슐린은 3개의 아미노산이, 돼지 인슐린은 1개의 아미노산이 사람의 것과 달라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사람과 맞지 않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제 기법이 발달되지 않아, 면역학적 문제로 주사 부위의 지방 위축, 국소 및 전신 알레르기 반응, 혹은 인슐린 항체 형성에 따른 인슐린 저항성 등이 생기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1982년 이후 정제기법이 발전하면서 고순도 동물 인슐린 생산이 가능해지고, 또 유전자 재조합 기법에 따라 인슐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인슐린과 관련된 문제가 거의 해결되게 되었다.

프레데릭 생어 등 많은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오늘날에는 수만 명의 사람이 1주일 동안 생산해내는 것과 맞먹는 엄청난 양의 호르몬을 단백질 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다량 생산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여러 종류의 인슐린 동족체(analogue)들이 개발되고 있다. 인슐린 동족체는 분자생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인슐린의 단백질 구조를 변형시킴으로써 인슐린 작용 발현시간을 빠르거나 느리게 변형한 것으로, 좀 더 생리적인 인슐린 치료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식후혈당 상승을 막기 위해 흔히 사용되고 있는 인슐린 동족체중 하나인 초속효성 인슐린의 경우 보다 빠른 작용으로 정상인의 식후 인슐린 분비 패턴과 유사하게 작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또 지속형 인슐린의 경우 24시간 혈당강하 효과가 지속되어 하루 한번 사용으로 편리하게 혈당 조절이 가능하다. 중간형 및 초속효성 인슐린 등 다양한 비율로 혼합 제조된 인슐린이 만들어졌으며, 이를 담는 용기도 펜형 인슐린 주사로 개발되어 쉽고 간편하게 투여할 수 있게 되었다.

 

당뇨병 환자 중에서는 주사로 약물을 주입하는 주사치료라는 이유로 인슐린 치료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과 거부감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또한 인슐린 치료를 시작하면 의존성이 생겨서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꺼리는 환자도 있다. 그러나 인슐린 치료는 당뇨병 치료 중 가장 오래되고 안전한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임신한 환자의 경우, 인슐린 치료가 더욱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해가 될까 인슐린 치료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어 의료진의 애를 먹이기도 한다.

필요 시 적절한 인슐린 치료를 한다면 당뇨병 합병증의 예방에 도움이 되며, 임신성 당뇨병 환자에서도 태아와 엄마 모두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있는 치료 수단이다. 인슐린 치료가 금기가 되는 환자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당뇨병 치료에 있어 안전한 치료다.

 

인슐린은 많은 과학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 끝에 발견된 후부터 비약적인 진보를 이룩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처 어딘가의 실험실에서는 인슐린과 관련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슐린이 주사의 형태로만 투여가 가능한 상태여서, 환자들이 인슐린 주사에 대해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앞으로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흡입형 인슐린의 승인이 최근 미국 FDA에서 긍정적인 검토를 받고 있는 가운데, 의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도에 비춰본다면 머지않아 먹는 인슐린이 개발될 지도 모른다.

좀더 수월하게 인슐린 치료를 받는 세상에서 당뇨병 관리를 하는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현재의 인슐린 치료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인슐린 요법

인슐린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작용 시간에 따라 나뉘게 되는데 개인의 혈당 변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어떤 인슐린을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인슐린의 공급 방법은 크게 일정 용량을 피하주사 형태로 하루 1회에서 수회 맞는 방법과 펌프를 피하에 거치하여 24시간 내내 주입 받는 펌프 방식의 두 가지로 나뉜다.

인슐린은 단백질로 되어 있어 경구로 복용할 경우 위에서 모두 파괴되므로 반드시 피하주사로 투여해야 한다. 인슐린 주사를 위해서는 인슐린 주사기와 바늘, 알코올 솜이 필요하다. 인슐린은 사용 전 제제의 종류, 유효기간, 색깔 변화 및 부유물 여부를 꼭 확인하도록 하고, 주사 전 주사기 안의 공기를 반드시 제거하고 주사한다.

대부분의 당뇨병 환자에서는 장기간의 인슐린 주사 요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초기에 자기 주사법을 교육 받아 집에서 자가로 주사를 하게 된다.

 

인슐린 치료의 가장 흔한 부작용은 저혈당이다. 과다한 인슐린이 투여된 경우, 인슐린 투여 후 식사를 하지 않은 경우, 인슐린 작용이 최대로 나타날 시간에 무리한 활동하거나 운동을 하는 경우에 저혈당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할 경우 주스나 사탕과 같이 빠르게 혈당을 올릴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면 호전된다. 반복적으로 저혈당이 발생한다면 의사와 상의하여 인슐린 용량을 조절한다. 인슐린 치료 후 인슐린 과민성이나 면역학적 인슐린 저항성이 드물게 나타날 수 있다. 반복적인 인슐린 주사로 인하여 피하 지방이 위축되거나 같은 부위에 인슐린 주사를 반복함으로써 지방 비후가 일어나거나 인슐린 주입 부위에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매우 드문 부작용으로 국소적 혹은 전신적으로 인슐린 부종이 나타날 수 있다.

 

인슐린 치료 후 저혈당 증상(심한 공복감, 어지럼증, 식은땀 등)이 나타나는 경우 자가 혈당 측정기로 저혈당인지 확인하고, 저혈당이 확인되면 빠르게 혈당을 올릴 수 있는 당분이 많이 함유된 음식(주스, 사탕, 초콜릿 등)을 먹고 혈당을 정상화시키도록 한다. 만약 의식 장애, 경련을 보이는 경우 최대한 빨리 응급실로 내원하여 포도당 주사제제를 투여 받고 혈당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처치해야 한다.

대부분의 인슐린은 상온 15~20℃에서는 보통 1개월, 4℃ 냉장 보관에서는 유효기간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인슐린 치료는 반드시 당뇨병에 해당하는 식이 요법이 동반되어야 한다. 일정하고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본인에게 필요한 인슐린의 양을 파악하고, 식사량이 변할 경우 인슐린 요구량이 변할 수 있음을 숙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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